20년 만에 돌아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악마'가 사라진걸까?

배우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 프리슬리

사진 출처, 20th Century Fox

    • 기자, 캐린 제임스
  • 읽는 시간: 3 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는 올해 현재까지 나온 영화들 중 가장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홍보 과정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독설가 상사의 캐릭터가 유순해지고, 원작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도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가을, 밀라노에서 열린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패션쇼 현장에 메릴 스트립과 스탠리 투치가 등장했다. 2006년 흥행작의 후속편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의 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각각 극중 인물인 미란다 프리슬리와 나이젤 키플링의 의상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깜짝 등장은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며, 흥미로운 예고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해당 패션쇼에서 미란다로 분한 스트립은 안나 윈투어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보그(Vogue)를 이끌어온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미란다라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라는 이야기를 교묘하게 인정한 셈이다. 영화에서 스트립은 오만하고 냉담한 패션 잡지 편집장인 미란다를 단숨에 시대적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인물의 정체성을 뒤섞고, 안나 윈투어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차용한 요란한 홍보가 이어졌다. 물론 초반에는 영리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는 다소 짜증스러울 만큼 반복되고, 급기야 영화 본연의 가치를 압도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후속작이 원작의 강렬함을 잃고 원작의 그림자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나온다.

안나 윈투어와 미란다 프리슬리 역의 메릴 스트립

사진 출처, Annie Leibovitz/ Vogue

사진 설명, 안나 윈투어와 미란다 프리슬리 역의 메릴 스트립이 함께 등장한 보그 표지에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안나 윈투어가 주인공 앤디 역의 앤 해서웨이와 함께 시상자로 나섰다. 앤 해서웨이는 전편에서 미란다의 비서 역을 맡았던 배우다. 이 자리에서 윈투어는 해서웨이를 "에밀리"라고 부르는 상황극을 선보였다.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동료 비서의 이름을 자주 틀리게 부르던 미란다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낸 장면이었다.

최근 보그가 미란다로 분한 스트립과 윈투어가 나란히 선 표지 사진을 공개하자, 인터넷상에서는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잡지에는 메릴 스트립과 윈투어의 합동 인터뷰도 실렸다. 소셜 미디어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 인스타그램 댓글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문화적 접점"이라며 환호했지만, X(구 트위터)에서는 "보기 민망하다"는 조소 섞인 반응도 있었다.

요즘에는 배우와 가상 캐릭터 간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홍보 방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모호해진 현재의 정치적·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전략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상 후보작 '마티 슈프림'에서 기회주의자 역할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마케팅 회의를 주도하는 모습을 담은 연출 영상을 공개해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위키드' 홍보 투어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에리보는 극중 캐릭터들의 유대감을 재현하며 눈물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홍보에 대중은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빨 빠진' 캐릭터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홍보는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안나 윈투어가 곳곳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서 풍자성이 약해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원작에서 메릴 스트립은 미란다를 기이하면서도 유쾌한 독설가 상사로 그려냈다. 예를 들어, 미란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정 변경에 대해 비서 에밀리를 탓하면서 "네 무능함의 세부 사항 따위는 내 관심 밖이야"라며 차갑게 내뱉는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안나 윈투어는 "텐트 밖에서 비판을 받느니, 차라리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팬들에게 아쉬운 점은, 이번 홍보가 속편에서 미란다의 한층 부드러워진 면모를 보여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개된 예고편에 따르면, 영화는 앤디가 다시 미란다의 영향권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전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회상 장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장면에서 나이젤의 내레이션은 잡지 런웨이를 "우리를 다시 하나로 모으는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묘사하며 복귀를 암시했다.

합동 인터뷰에서 윈투어는 속편 제작 소식을 듣고 스트립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스트립은 "다 괜찮을 거예요"라며 윈투어를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현재 윈투어는 보그 편집장이 아닌, 발행사 콘데 나스트(Condé Nast)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를 맡고 있다.

보그는 지속적으로 이 영화와 관련된 기사를 보도했다. 홍보 투어 레드카펫에서 등장한 패션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보그 북클럽'을 통해 1편의 원작 소설을 다시 읽기도 했다. 심지어 보그의 팟캐스트에는 윈투어의 전직 비서 3명이 출연하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속편이 아닌 원작이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안나 윈투어와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이 영화와 거리를 두었다. 스트립은 이번 보그 인터뷰에서 "첫 번째 영화 때는 모두가 안나를 두려워했기에 의상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번 속편에서 의상을 담당한 몰리 로저스는 디자이너들이 이 영화를 "세계 최고의 PPL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보그처럼, 이 영화 역시 돌체앤가바나, 발렌시아가, 디올, 피비 파일로와 같은 브랜드들의 화려한 프로모션 장이 되고 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스티븐 콜베어의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에 출연한 메릴 스트립은 미란다 캐릭터를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란다는 자신이 하는 말이 가시 돋친 소리라는 걸 알지만, 동시에 그것이 일종의 농담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방식이 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재미있는 거죠."

그러나 콜베어의 관객들은 이 발언에 오히려 실소를 터뜨렸다. 공포에 떨고 있는 비서의 입장이라면, 그런 행동이 결코 재미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공동 주연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는 이번 영화를 위해 대대적인 글로벌 홍보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Alamy

사진 설명, 영화의 공동 주연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는 이번 영화를 위해 대대적인 글로벌 홍보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캐릭터 중심의 홍보는 미란다와 그 실제 모델인 윈투어 모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윈투어는 자신을 공포의 상사가 아니라, 본인의 희화화된 이미지를 기꺼이 수용할 줄 아는 '쿨한' 인물로 영리하게 포지셔닝했다. 그리고 그 희화화된 이미지는 이제 훨씬 더 친절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편과 속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얼라인 브로쉬 매케나는, 보그를 통해 두 영화의 감독을 맡은 데이비드 프랭클이 첫 번째 각본 작업 당시 자신에게 했던 말을 전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지,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한 여성이 프라다를 입는다'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그 강렬했던 캐릭터는 더 이상 예전만큼 '악마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