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 이전에 세로, 꼬마도 있었다' 탈출한 동물원 동물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사진 출처, Reuters
- 기자, 이선욱
- 기자, BBC 코리아
- 읽는 시간: 5 분
지난 8일 대전 오월드를 탈출했다가 9일 만에 포획된 늑대 '늑구'는 추격 과정부터 동물원에 돌아간 이후까지 일거수일투족이 큰 관심을 받으며 이른바 '스타'가 됐다.
그런데 늑구 이전에도 얼룩말 '세로', 말레이곰 '꼬마'가 있었다.
그랜트얼룩말 세로는 2023년 3월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해 거리를 배회하다가 약 3시간 만에 포획됐고, '가장 작은 곰'으로 알려진 말레이곰 꼬마는 지난 2010년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서울동물원을 탈출했다 9일 후 인근 청계산에서 포획돼 돌아왔다.
이밖에도 각종 동물 관람·체험 시설에서 동물들의 탈출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로나 늑구처럼 바깥을 돌아다니는 탈출 동물들의 모습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며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탈출했던 동물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 한때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동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BBC가 다시 만나봤다.
홀로 지내는 '세로'
22일 오전, 얼룩말 '세로'는 서울 어린이대공원 방사장 앞뒤를 오가고 있었다. 관람객 가까이에까지 와서 나무에 매달린 고무 장난감을 당기다가 반대편 끝에 있는 철문 앞에 가 서있기도 했다. 가끔은 옆 방사장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철창을 통해 이웃인 과나코를 관찰하기도 했다.
지난 2023년 세로가 탈출한 이후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은 세로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세로가 부순 울타리 높이를 높이고, 방사장을 기존의 두 배 넓이로 확장했다.
함께 지내던 부모를 잃은 외로움이 당시 탈출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같은 해 6월 암컷 얼룩말인 '코코'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코코는 4개월 만에 돌연 사망했다. 동물원 측은 이듬해 11월에는 얼룩말이 아닌 미니말 '향미'도 데려왔으나, 향미가 번식기가 되어 방사장을 떠나자 세로는 지난해 3월부터 다시 혼자가 됐다.
지난 16일 어린이대공원을 방문해 세로의 생활 모습을 모니터링했던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이슈행동팀장은 세로가 이처럼 단독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에 아쉬움을 표했다.
정 팀장은 "사육 환경이 과거보다 좋아졌고, 사육사 분들이 먹이를 주면서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등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면서도,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던 부분이 아직까지 충분히 개선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짝을 데려오는 조치는 무리생활을 하는 얼룩말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얼룩말은 무리 생활을 하는 종이다. 때문에 서울동물원, 에버랜드 주토피아, 전주동물원, 광주 우치공원 등지에서는 얼룩말을 3마리 이상 집단으로 기르고 있다.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최태규 수의사도 "탈출했을 당시 세로를 여러 마리가 같이 살고 있는 동물원으로 보내라고 직접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현재 "2029년 완공을 목표로 방사장 재조성 공사를 추진 중"이라면서 "이 공사가 끝나는 대로 얼룩말 추가 합사를 고려 중"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세로를 위해 "(펜스 한 쪽을 터서) 옆 동물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고, 방사장 벽에 얼룩말 그림 벽화도 그려줬다"고 덧붙였다.
8살에서 만 22살 고령이 된 말레이곰 '꼬마'
"곰이 심심한가 봐. 계속 왔다갔다 하네."
22일 오후 4시 무렵, 서울동물원의 말레이곰 방사장을 찾은 김혜선 씨는 3살 딸에게 '꼬마'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3년생인 꼬마는 지난 2010년 12월 동물원 측이 방사장을 청소하던 사이 격리장 문을 앞발로 열고 탈출했다. 이후 경찰과 소방, 동물원 측에서 수백여 명의 인력이 동원돼 꼬마를 찾기 위한 노력을 벌였으나 꼬마는 번번이 추격을 뿌리쳤다. 곳곳에 흔적을 남긴 꼬마는 산에 있던 편의점에서 과자, 주스, 컵라면, 양갱 등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 탈출 10일째인 12월 15일, 먹이를 넣어둔 포획틀에 들어가 잡혔다.
탈출 사건 이후 서울동물원에서는 이듬해 꼬마를 위해 기존보다 약 4배 넓은 방사장을 만들어줬다. 2015년에는 새 짝 '오순이'도 데려왔다.
새 방사장에서 지낸 지도 15년, 탈출 당시 8세 청년이던 꼬마는 어느덧 고령인 만 22세가 됐다.
이날 서울동물원에서 만난 꼬마는 해먹에 누워있기도 하고 함께 지내는 암컷 오순이와 놀기도 하다 오후 3시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방사장 한켠에서 같은 지점을 반복해 오가기 시작했다.
방사장 오른쪽 끝에 있는 철문 앞에 잠시 멈춰 바깥을 내다보고는, 다시 작은 원을 그리며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기를 반복했다. 김 씨는 "처음엔 귀엽다가 보고 있으니 안절부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안 됐기도 하다"고 말했다.
오후 4시를 넘어서부터 꼬마의 반복 행동은 더 심해졌다. 같이 지내는 오순이보다도, 옆 방사장의 불곰들보다도 심한 반복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꼬마가 돌기를 멈춘 것은 내다보던 곳에서 사육사가 나타난 오후 5시 무렵. 방사장 퇴근을 위해 사육사가 다가오자 마침내 내실과 통하는 반대편 철문 앞으로 달려온 꼬마는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모습을 감췄다.
꼬마의 상태에 대해 서울동물원 측은 "예전에는 불안정한 부분이 있었지만 현재는 크게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형행동을 하는 모습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서울특별시
전문가들은 이 자체만으로 꼬마의 현재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최태규 수의사는 정형행동에 대해 "(동물들이) 살아온 시간 동안에 스트레스 요인들이 있었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표는 될 수 있지만, 꼭 지금 당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이기도 한 그는 "서울대공원은 행동풍부화(동물원 동물들이 야생의 습성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자극을 제공해주는 조치) 등을 매우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동물을위한행동의 전채은 대표도 "서울동물원은 국내에서 (동물) 관리가 굉장히 잘되는 곳"이라면서도, 정형행동은 "동물원 곰들에게만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전했다.
"저는 정형행동을 안 하는 동물원 곰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돌아오지 못한 동물들
사진 출처, 뉴스1
늑구나 세로, 꼬마처럼 지내던 동물원으로 돌아가는 동물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2008년 국립수목원을 탈출한 늑대 '아리', 2018년 대전 오월드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 2023년 경북 고령의 한 관광농원을 탈출한 사자 '사순이'는 생포되지 못하고 시민 안전 등을 이유로 사살됐다.
2023년 대구 달성공원에서는 침팬지 두 마리가 탈출했다가 2시간 만에 마취총을 맞고 포획됐는데, 이 중 수컷인 '루루'가 마취 후 회복 과정에서 기도가 막혀 치료를 받던 중 당일 사망했다.
늑구의 탈출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2일에는 경기도 광명의 한 농장에서 사슴 5마리가 탈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탈출 사건들이 전국에서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전채은 대표는 "서울동물원이나 어린이대공원, 오월드처럼 굉장히 좋은 동물원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늑대의 생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복원시켜놓은 곳이 오월드인데, 여기서도 이런 사고가 발생했어요. 그럼 작은 동물원들에서 알려지지 않는 탈출 사례는 대체 얼마나 많을까요?"
사진 출처, 대전광역시
최태규 수의사는 이들 동물원이 "가장 기본적인 일마저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야생동물을 가둬 키우는 곳에서 '잘 가두'는 일은 동물복지를 따지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세로가 나간 일차적인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울타리가 낮고 잘 부서지는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것.
최 수의사는 그러면서 탈출 동물들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걱정을 표했다.
"늑구는 '서민 체험을 다녀온 왕자'처럼 의인화되고 있고, 세로는 포획 이후 단순히 '삐쳤다'는 표현들을 쓰기도 했어요. 이러면 이들에 대한 상업적 관심은 올라가지만, 탈출 사고의 문제성은 희석될 수밖에 없죠."
'동물원, 이제는 변할 때'
기후환경에너지부는 늑구 사건을 계기로 유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동물원 안전관리 및 동물복지 향상 대책'을 시행할 방침이라고 22일 밝혔다.
현행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조기에 전환하기로 했고, 동물원수족관법상 허가를 받으려면 사육사 수를 늘리고, 동물 탈출 방지 시설 등을 갖추도록 했다. 이밖에 동물들에게 먹이주기, 만지기 등의 체험도 제한된다.
전문가들 역시 이제라도 동물원에 대한 관리가 강화돼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정진아 팀장은 "늑구가 사살되지 않고 생포되길 바라는 여론 등을 봤을 때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면서, "동물원도 단순히 오락 목적이 아니라 살고 있는 동물들의 보호와 복지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방향으로 변화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채은 대표도 "정말 우리가 보호하고 보존해야 되는 동물들에 대해 잘 보호하고 연구하는 역할로 동물원의 목표를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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